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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3. [신문] AI가 답을 주는 시대, 대학은 질문을 가르쳐라
- 수정일
- 2026.09.08
- 작성자
- 반도체특성화대학사업단
- 조회수
- 133
- 등록일
- 2026.09.08
기고_김용석 가천대 석좌교수·반도체교육원장
"정답 찾기 타성 벗어나 ‘문제 정의’ 역량 키워야"

AI가 지식을 독점한 오늘날 인간에게 남은 유일한 차별점은 바로 'Why(왜)'를 찾는 능력이다. 이미지=챗GPT
사이먼 시넥의 저서 『스타트 위드 와이(Start with Why)』는 전세계 500여 개국에 출간돼 400만 부이상 판매된 유명한 책이다. 필자가 오래전 기업에서 근무할 때 큰 감흥을 받았던 책이기도 하다. 저자는 성공하는 이들이 단순히 ‘무엇을(What)’ 하고 ‘어떻게(How)’ 하는지를 넘어, ‘왜(Why)’ 이 일을 하는지에 대한 명확한 목적의식에서 출발한다는 점에 주목한다. 위대한 리더와 조직은 '왜(Why)'에서 시작해, '어떻게(How)', '무엇을(What)'의 순서로 생각하고 행동하며 소통한다고 설명한다.
2009년에 출간된 오래된 내용이지만, 인공지능(AI) 시대를 마주한 오늘날, 이 책은 우리 대학교육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보여주는 이정표가 될 것으로 보인다. 다시 이 책을 꺼내게 된 이유는 과거의 교육이 정답을 빠르게 찾는 'How(어떻게)'와 'What(무엇을)'에 집중했다면, AI가 지식을 독점한 오늘날 인간에게 남은 유일한 차별점은 바로 'Why(왜)'를 찾는 능력에 있기 때문이다. 『스타드 위드 와이』 속 '골든 서클 모델'로 한국의 대학교육의 방향을 찾고자 한다.
‘과속 선행학습’이 망친 대학교육, 주입식 타성 깨야
우리는 AI 시대 한가운데에 살고 있다. 과거에는 방대한 지식을 머릿속에 넣고 문제를 해결하는 ‘How(어떻게)’의 역량이 인간의 핵심 경쟁력이었다. 그러나 앞으로는 기술적 구현, 데이터 분석, 실행 방법론 등 ‘How’의 영역은 인간보다 AI가 훨씬 더 빠르고 정확하게 해낼 것이다. 이런 시대에 지식을 일방적으로 전달하고, 누가 더 잘 암기했는지를 평가하는 대학교육 방식은 아무런 의미를 가지지 못한다. AI가 정답을 실시간으로 찾아주는 세상에서 인간이 AI와 같은 방식으로는 승산이 없다. 인간 고유의 역할은 "어떤 문제를 풀 것인가"를 스스로 결정하는 일이다.
대학 신입생들의 역량을 저하시키는 근본 중 하나로 초·중·고교의 과도한 '선행학습'을 꼽을 수 있다. 오늘날 한국의 청소년들은 학창 시절 내내 빠른 선행학습으로 대학 입시를 준비하고, 심화문제의 정답률을 높이는 기계적 훈련에 매몰되어 왔다.
예습과 선행학습은 미리 공부한다는 점만 같을 뿐 배우는 깊이와 관점이 완전히 다르다. 예습은 학습할 내용을 맛보며 궁금증과 질문을 유발하지만, 선행학습은 지정된 교육과정을 앞서 과속으로 훑어버린다. 선행학습의 이면에는 ‘이미 정해진 정답이 있으니, 남들보다 먼저 암기하면 앞설 수 있다'는 생각이 깔려있다. 이러한 교육을 거쳐 대학에 입학한 학생들은 스스로 유기적인 사고를 전개하는 데 큰 어려움을 겪는다.
실제 취업과 창업, 나아가 인생을 설계하는 모든 과정은 정답이 없는 상태에서 스스로 문제를 정의하고 해결책을 찾아 나가는 과정의 연속이다. 청소년시절 과도한 선행학습에 익숙해진 학생들은 대학에서도 ‘정답과 결론을 빠르게 찾아내는 방식’으로만 공부하려는 경향을 보일 수 있다. 이는 ‘스스로 고민하고 질문을 던지는 힘(자기주도성)’을 약화시키는 결정적 원인이 될 수도 있다. 정답만 찾는 습관을 깨뜨리지 못하면 대학 교육의 변화도 어렵다.
대학이 학생을 자기주도적이고 질문하는 인재로 키우기 위해서는 기존의 지식 전달식 교육과정의 변화가 필요하다. 바로 '토론 및 참여형 교수법'으로의 전환이다. 플립러닝(Flipped Learning, 역진행 수업), PBL (Problem-Based Learning, 문제 중심 학습)이 대학현장에서 일부 활용되고 있긴 하지만, 아직 완전히 정착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미국 AI 소프트웨어 기업 팔란티어를 비롯해 오픈AI와 앤스로픽은 새로운 직종인 '현장 배치 엔지니어(FDE)를 대거 채용하고 있다. LG CNS는 지난 3월 팔란티어와 전략적 파트너십 계약을 체결했다. LG CNS는 팔란티어 사업 전담조직인 '현장배치 엔지니어링'을 신설했다. 사진=연합뉴스
대학 무용론의 경고…AI 기업 팔란티어가 고졸 신입을 뽑는 이유
세계 최고 수준의 미국 대학들과 혁신 기업들은 이미 교육의 패러다임 전환을 적극적으로 이끌고 있다. 대표적으로 스탠퍼드대의 디스쿨(d.school)은 디자인 씽킹(Design Thinking)을 기반으로 생각과 아이디어를 디자인하는 방법을 가르친다.
핵심은 디자인 씽킹(Design Thinking)이다. 교과서 속 정형화된 문제를 푸는 것이 아니라, 현실 세계의 복잡한 진짜 문제를 발견하고 정의하는 ‘Why’ 훈련에 집중한다. 최근에는 AI와 디자인 씽킹을 접목해 AI를 단순한 자동화 도구가 아닌, 인간 중심 문제 해결을 위한 ‘생각의 파트너(Thinking Partner)’로 활용하며, 비즈니스와 사회 문제를 풀어가는 법을 교육한다.
하버드대 교육대학원의 프로젝트 제로(Project Zero) 역시 1967년에 설립 이후 약 60년 동안 인간의 지능, 창의성, 윤리, 깊이 있는 학습(Deep Thinking)의 본질을 연구해 온 세계적인 교육 연구소다. 스탠퍼드 디스쿨이 '실행과 시제품 중심의 문제 해결'에 방점을 둔다면, 하버드 프로젝트 제로는 '생각의 깊이 있는 이해'에 초점을 맞춘다. AI를 인간의 비판적 사고와 주체성을 키우는 파트너로 활용한다.
기업들의 행보는 더욱 파격적이다. 미국 최고의 AI·빅데이터 기업인 팔란티어 테크놀로지스는 대학에 진학하지 않은 10대 졸업생을 대상으로 '능력주의 펠로십(Meritocracy Fellowship)'을 개설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 보도에 따르면, 작년 팔란티어는 올해 능력주의 펠로십을 개설해 대학에 진학하지 않은 10대 졸업생 22명을 선발했다. 4년 동안 강의실에서 정형화된 이론과 ‘How’를 배우는 것이 AI 시대에는 무의미하다는 판단에서다.
팔란티어는 선발된 사원들에게 기술 지식을 가르치기에 앞서 인문학 세미나를 통해 역사와 철학을 토론하게 하고 비판적 사고와 문제 정의 능력(Why)을 먼저 훈련시킨다. 이후 4개월동안 현장에 배치해 월 5400달러(약 780만 원)의 급여를 받으며 병원, 보험사, 방위산업체, 정부 기관 등 다양한 고객사와 접촉하며 실제 업무를 수행하고 평가 후, 정규직으로 전환될 기회를 얻는다.
알렉스 카프 팔란티어 CEO는 하버포드대에서 철학을, 스탠퍼드대에서 법학을 공부했지만, “미국 대학은 더 이상 신뢰할 만한 우수 인재를 길러내지 못한다”고 단언한다. 그는 정답 프레임에 갇힌 졸업장보다 현장에서 '왜 이 문제를 풀어야 하는가'를 규명하는 역량을 최고의 가치로 삼고 있다. 이는 대학이 변하지 않는다면, 기업이 직접 미래 인재를 육성하는 ‘대학 무용론’이 현실화될 수 있다는 걸 보여주는 경고 메시지다.

AI 시대의 대학교육은 학생들을 강의실에 앉혀두고 지식을 전달하는 데 머물러서는 안 된다. 사진=가천대
‘Why’에서 출발하는 대학교육에 미래가 있다
『스타트 위드 와이』'골든 서클 모델'에 적용해 보면, 오늘날 ‘How’는 AI가 상당 부분 대체할 수 있다. ‘Why’ (인간의 영역)는 어떤 문제를, 왜 풀어야 하는지 정의하는 목적의식, ‘How’ (AI의 영역)는 정의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기술적 구현과 데이터 분석이고, ‘What ‘(공동의 영역)는 인간과 AI가 협업해 만들어낸 혁신적인 결과물이 된다.
최근 컴퓨터공학(CS) 전공자의 취업난이 심화된 이유도 여기에 있다. 간단한 API 구현, 표준 라이브러리 기반의 단순 반복 코딩, 테스트 코드 작성 및 문법 오류 디버깅, 기초적인 로그 분석 보고서 초안 작성 등 신입사원이 하던 ‘How’의 업무를 AI 에이전트가 완벽히 대체하고 있다.
이로 인해 기업은 많은 비용과 시간을 들여 신입을 교육할 필요가 사라졌고, 고숙련 시니어 중심 채용으로 전환하고 있다. 이제 기업이 원하는 것은 시스템 아키텍처 설계나 비즈니스 문제 정의 같은 상위 차원의 ‘Why’ 역량이다.
따라서 대학 교육은 '프로젝트 중심'의 패러다임으로 전환해야 한다. 학생 스스로 작은 시스템의 사양을 정의하는 'Why' 단계부터 시작해 팀 단위로 대규모 아키텍처를 설계하는 능력을 키워줘야 한다. 처음에는 AI도움없이 스스로 코딩을 해 볼 필요도 있다. AI와의 협업을 잘 하기 위해서 거쳐야 하는 과정 이다.
이 기틀이 잡히면 단순 코딩과 디버깅 같은 ‘How’ 영역은 AI와 함께 하며, 과제관리 하는 경험을 배우게 된다. 최종적으로는 AI와의 유기적 협업을 통해 높은 완성도의 결과물을 창출하는 인재를 키울 수 있다. 다른 영역의 교육에도 유사하게 적용 해 볼 수 있을 것이다.
필자가 인문사회계열 학생들을 대상으로 진행했던 프로젝트 수업도 좋은 예다. 학생들에게 '5년 후의 스마트폰 및 스마트홈'을 상상하게 한 뒤, 1단계에서는 기존 제품 분석을 거쳐 온갖 아이디어를 30~40개씩 쏟아내게 했다. 본질적인 'Why'를 찾는 과정이었다.
2단계에서는 사업화 가능성이 높은 아이디어를 3~4개로 압축해 구체화하는 'How'의 과정을 거쳤다. 지금은 AI를 활용할 수 있겠다. 최종 발표회에서는 삼성전자 실무진의 평가를 받게 해, 학교 교육과 시장의 눈높이를 맞췄다. 컴퓨터공학 전공자가 기술적 실현 가능성과 시스템 효율성 측면에서 ‘Why’를 찾는다면, 인문사회 전공자는 서비스 아이디어 중심의 ‘Why’를 설계하면 된다. 앞서 설명한 미국 스탠퍼드대와 하버드대의 혁신교육 활동을 생각해 보면 이해가 쉽다.
AI 시대의 대학교육은 학생들을 강의실에 앉혀두고 지식을 전달하는 데 머물러서는 안 된다. 실제 사회와 산업계가 직면한 현실적 문제를 마주하게 하고, "이 문제를 왜 풀어야 하는가?"를 치열하게 고민하게 해야 한다. 문제를 명확히 정의했다면 구체적 해결 방법(How)은 AI라는 강력한 파트너와 함께 만들어 가면 된다.

SK하이닉스는 기존의 자기소개서 항목을 없애고, 평가항목으로 ‘AI 활용 역량’을 추가했다. 사진=연합뉴스
최근 국내 대기업의 신입채용 방식의 변화가 있다. SK하이닉스는 올해 8월 신입사원 모집에서 스펙과 서류 평가에서 벗어나 지원자의 문제 해결 능력과 실전형 역량을 검증하는 방식으로 바꾸었다. 기존의 자기소개서 항목을 없애고, 평가항목으로 ‘AI 활용 역량’을 추가했다. AI를 활용해 현업 문제를 얼마나 능숙하게 해결하는지를 보겠다는 것이다. 결국 대학에서 생각하는 힘인 ‘Why’와 AI를 활용해서 ‘How’를 찾는 수업이 필요 하다.
'Why'를 잃어버린 채 'How'와 'What'에만 매몰되는 조직이나 개인은 지속 가능한 성공을 거둘 수 없다. 정답 찾기 교육에서 문제 정의 교육으로의 패러다임 전환은 대학과 학생 모두에게 생존의 문제다. 주입식 선행학습의 타성에서 벗어나 학생 스스로 자신만의 'Why'를 찾는 힘을 길러줄 때, 우리 대학생들은 AI 시대의 주체적인 리더로 성장할 것이다.
김용석 가천대 석좌교수, 반도체교육원장
김용석 석좌교수는 가천대 반도체교육원 초대 원장이며, AI반도체설계전문대학원장을 맡고 있다. 삼성전자에서 31년간 몸담으며 시스템반도체와 이동통신 소프트웨어, 갤럭시 시리즈 개발을 주도했으며 이 중 10년간 연구 임원을 지냈다. 삼성전자 재직 시 대통령상, 국무총리상, 삼성기술상을 받았고, 삼성전자 엔지니어 최고 영예인 삼성전자 명예박사 학위를 받았다. 이후 11년간 성균관대 전자전기공학부 교수로 있었으며, 최고의 권위상인 ‘올해의 성균인상’, 벤처기업부 장관상을 받았다. 성균관대 정년 퇴임 후 2024년 9월부터 가천대에서 후학을 양성하고 있다. 반도체공학회 부회장을 거쳐 현재 고문으로 있으며, 반도체산업 경쟁력 강화 특위 위원을 지냈다. 또한, 산업통상부 산하 AI 반도체 M.AX 얼라이언스 위원장을 맡고 있다. 2025년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지은 책으로 『AI반도체전쟁』, 『일의 본질』, 『엔지니어, 세상의 중심에 서라』가 있다.
김용석 가천대 석좌교수 editor@kyosu.net
보도일자: 2026년 9월 8일
보도매체: 교수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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