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사저널e=고명훈 기자] “대기업들이 참여하고 있고, 팹리스(반도체 설계) 기업들은 그 대기업들이 필요로 하는 칩을 맞춤형으로 기획하고 제작합니다. 여기엔 해당 칩이 잘 나오면 무조건 쓰겠다는 의지가 포함된 거예요. 실제 쓰기만 한다면 대기업 기반이라서 대량 물량이 가능해지는 거고, 자연스럽게 팹리스도 같이 살아나게 될 겁니다.”
10일 김용석 가천대 반도체대학 석좌교수는 “온디바이스 AI는 우리나라 팹리스가 회생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라며 이같이 설명했다.
김 교수는 현재 산업통상자원부가 추진 중인 ‘K-온디바이스 AI 반도체 기술개발’ 사업 총괄위원장을 맡고 있다. 해당 사업은 수요기업 주도하에 팹리스 기업들이 업종별로 최적화한 온디바이스 AI 칩을 개발해 실제 양산공급까지 진행한다는 것이 주 골자로, 2026년부터 2030년까지 총 1조원 규모의 예산이 투입된다.
산업부는 지난 6개월간 사업기획 과정에서 자동차, 가전·IoT, 기계·로봇, 방산 등을 4대 산업 분야로 설정했다. 수요기업은 현대자동차, LG전자, 두산로보틱스, 대동, 한국항공우주산업(KAI) 등이 참여했다.
김 교수는 “우리나라는 팹리스와 파운드리를 시스템반도체로 묶어서 얘기해버리는데, 이러면 우리 시스템반도체 산업 부진의 원인이나 대책을 논의하기 굉장히 어려워진다”며 “두가지를 구분하되, 설계에 더 집중하고, 파운드리는 후순위로 시간을 갖고 더 투자해야 하는 부분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산자부의 이번 K-온디바이스 AI 과제는 우리 팹리스가 회생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라며 “사실 이러한 유형의 과제는 1조원 정도를 더 투자해서 지속했으면 한다. 온디바이스 AI 분야 팹리스 창업자들과 기존에 잘하고 있는 기업들을 지원해주고, 지금처럼 세트 기업쪽에서 새로운 과제를 만들겠다고 요청하면 그 부분도 도와줄 수 있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김 교수는 삼성전자에서 31년간 시스템반도체 개발, 이동통신 소프트웨어 개발, 갤럭시 제품 개발에 참여한 시스템반도체 분야 석학으로, 시스템(세트) 부서에서 반도체를 설계하는 주문형반도체(ASIC)를 국내에서 처음 시작한 인물이기도 하다. 이후 스마트폰의 핵심 칩인 모뎀의 알고리즘, 소프트웨어 개발 업무를 했으며, 2009년부턴 갤럭시 시스템소프트웨어 팀장을 맡아서 삼성전자 스마트폰 초대 제품인 갤럭시S 신화에 함께 했다.
삼성전자 퇴직 후엔 성균관대에서 10년 넘게 학생들을 가르쳤으며, KAIST IDEC(반도체설계교육센터) 운영위원과 반도체산업 경쟁력강화 특위위원, 반도체공학회 부회장을 지냈다. 성균관대 정년퇴임 후 지난해 9월부턴 가천대학교 반도체대학 석좌교수로 반도체교육원장을 맡고 있다.
다음은 김 교수와의 일문일답.
Q. 온디바이스 AI가 반도체업계 큰 화두로 떠올랐다. 한국 시스템반도체 분야에 어떤 기회가 될까
온디바이스 AI 기술은 PC뿐만 아니라 스마트폰, 태블릿, 웨어러블 기기 등 다양한 디바이스에서도 활용되고 있다. 향후 가전, 로봇, 자동차 등 다양한 분야에서 온디바이스 AI 응용이 본격화되면서 관련 반도체는 시스템반도체 산업의 주된 성장축이 될 것이란 전망이다. 시스템반도체 전체에서 온디바이스 AI 반도체가 차지하는 비중이 지난해 9.2%에서 2027년 16.1%, 2030년에 30.3%까지 확대될 것으로 보인다.
우리나라는 설계쪽을 키워야 했다. 제조업이 강한 대기업이 있고, 차별화를 위한 칩 개발의 필요성이 있기 때문이다. 설계만 있으면, 파운드리에선 삼성전자, TSMC 등 여러 선택지가 있다. 설계는 많은 분야가 있는데, 역시 다 잘하기는 어렵기 때문에 전문화된 기업을 키우고 집중해야 했다.
시스템반도체 설계는 시스템(셋트)이 주도해야 한다. 가장 경쟁력 있는 시스템(사양)의 열쇠를 쥐고 있기 때문이다. 팹리스의 역할이 아니다. 앞으로 온디바이스 AI 시장에서 잘해야 한다. 좋은 기회다. 현재 우리나라는 세계 6위의 제조업 강국이다. 강한 국내 대기업(제조업)과 AI 팹리스, 소프트웨어 기업의 생태계를 조성할 수만 있다면, 온디바이스 AI 분야에서 글로벌 시장을 선도할 수 있을 것이다. 과거에 디지털 기술이 혁신을 만들어 내 제조업이 성장할 수 있었던 것처럼, AI 기술이 또 다른 혁신을 해낼 수 있다.
Q. 온디바이스 AI에서 우리나라가 집중해야 할 부분은 무엇인가
온디바이스 AI 시장은 아직 지배적 강자가 존재하지 않는 초기 단계다. 국가적으로 정부, 기업, 대학이 총력을 기울인다면 제조업 경쟁에서 우위를 점할 수 있을 것이다. 지금 시기가 절호의 기회다. 국내 기업들이 총력을 기울여야 하는 AI 전환은 바로 현재의 제조업에 온디바이스 AI 기술을 입히는 일이다.

전세계 시장의 1% 수준인 국내 팹리스를 본격적으로 키우는 터닝포인트가 될 수 있다. 온디바이스 AI 칩, AI 모델, 소프트웨어 스택을 자체 개발해야 하기 때문이다. 온디바이스 AI에 탑재될 수 있는 AI 모델은 사이즈가 비교적 작아서 중소기업과 스타트업들도 충분히 특화된 모델을 개발할 수 있다. 메타의 라마3 같은 오픈소스 언어모델을 활용해 특정 산업 분야에 최적화된 모델을 개발하는 방법도 가능할 것이다. 클라우드 AI와는 다르게 디바이스 내의 자원(연산, 전력, 메모리)을 최소화하면서 개발할 수 있어야 한다.
Q. ‘K-온디바이스 AI 반도체 기술개발’ 사업의 그간 추진 과정을 소개한다면
산업부는 수차례에 걸쳐 자동차, 가전 등 주력산업 수요기업과 팹리스 기업의 기술 교류회를 가졌다. 그 결과 수요기업과의 협업을 통해 수요처를 확보하고 수요기업이 원하는 시스템온칩(SoC)을 개발하는 것이 가장 절실한 것으로 분석됐다. 2025년 1월 말에 4대 주력산업(자동차, IoT·가전, 기계·로봇, 방산) 분야를 대상으로 온디바이스 AI 반도체에 관심이 있고 기술개발 참여 의사가 있는 국내 산·학·연 중심으로 기술 수요조사를 했고 193건의 수요가 접수됐다. 이 중 107건(55.4%)이 기업의 수요였다. 이를 통해 기업들이 더 많은 관심을 두고 개발, 상용화하기를 희망하는 것으로 파악했다.
107건의 수요조사에서 수요기업이 제출한 기술 중 10건을 선택하고, 산·학·연 전문가로 기술기획위원회를 구성해 6개월여간 기획보고서를 작성했다. 현재 예비타당성 조사 면제를 위해 열심히 설득 중이며, 내년초 예산 확보를 목표로 하고 있다.
Q. 이번 사업에서 K-온디바이스 AI 총괄위원장을 맡게 됐다
2년전부터 언론 기고, 강연을 통해서 온디바이스 AI의 중요성을 강조했었다. 특히, 작년 9월에 출간한 ‘AI 반도체 전쟁’ 책을 출간하면서 책의 내용의 상당 부분을 온디바이스 AI 응용분야에 할애했었다. 아마도 이 영향이 컸던 것 같다.
이력 자체가 반도체 부서가 아닌, 세트 부서에서 제품에 필요한 칩을 설계했었다 보니, 이러한 경력을 높이 산 것 같다. 시스템반도체 설계뿐만 아니라 이동통신 모뎀 소프트웨어 개발이나 갤럭시 개발에서 시스템 소프트웨어를 두루 경험했던 점, 대학교수를 10년 넘게 지냈던 점 등이 선정 이유가 아닌가 싶다.
Q. 앞으로 K-온디바이스 AI 반도체 기술개발 사업을 성공적으로 이끌기 위해선 어떤 것들이 필요할까
온디바이스 AI는 세트 기업이 주도해야 한다는 특징을 지닌다. 앞으로 4~5년 후에 쓸 칩을 개발한단 목표로 칩에 대한 기획 능력을 갖추는 것이 굉장히 중요하다. 이를 구현하기 위해서는 칩설계 외에 AI 모델 최적화와 소프트웨어 개발도 매우 중요하다.
고객사에 아주 특화된 형태의 칩으로 AI 반도체를 개발해야 하며 이 과제를 통해 모듈의 형태로 국산화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결국은 세트부터 시작해서 소프트웨어, 칩, 응용 서비스 기업 간의 수직적인 협업을 통해 온디바이스 AI 생태계를 구축해야 한다.
따라서 수요기업인 대기업들의 역할이 매우 크다. 칩 개발, 소프트웨어 개발을 위한 최강의 드림팀을 구성해야 하고 5년간 개발 기간 중에 주 2회 정도 수준의 철저한 과제관리가 돼야 성공할 수 있다고 본다. 또 예산이 부족하면, 기업에서 추가로 투입해야 할 것이다.
Q. 온디바이스 AI는 칩 보단 소프트웨어 비중이 큰 분야다. 핵심 개발 인재는 어떻게 육성해야 하나
온디바이스 AI 개발을 이끌 핵심 인재는 ‘시스템 아키텍트(Architect·아키텍처를 만드는 사람)’다. 시스템반도체 설계를 할 때 전체 시스템 관점에서 큰 그림을 그리고 각 기술을 최적화하면서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 내야 한다. 이런 역량을 가지고 있는 전문가를 시스템 아키텍트라고 부른다. 시스템 아키텍트는 반도체 칩과 소프트웨어로 구성된 전체 시스템을 기획하고 상위 수준의 개념설계를 한다. 마치 큰 신도시를 설계하는 건축설계사의 역할과 같다.
이런 인력은 대학에서 석·박사 과정을 통해서 기초를 탄탄히 하고, 기업에서 다양한 작은 규모의 칩 설계, 소프트웨어 개발을 경험하고 최종적으로는 기업에서 육성, 완성해야 할 인재다. 대학에서 육성은 어렵고, 기업에서 장기적인 안목으로 육성해야 한다.
온디바이스 AI는 다양한 기술 스택이 모두 종합적으로 필요하다. 하드웨어적으론 AI 반도체가 필요하다. AI 반도체를 활용하기 위해선 시스템 소프트웨어와 SDK(소프트웨어 개발도구)를 제공해줘야 한다. 그리고 SDK 위에 AI 프레임워크가 사용되며, 다양한 AI 모델이 사용된다. 그리고 AI 모델을 사용한 다양한 AI 응용이 서비스에 활용된다. 이 모든 영역이 종합적으로 필요하다. 이를 주도할 핵심 인력이 바로 시스템 아키텍트다.
Q. 한국은 제조업이 강하다. 제조 AI 분야에서도 정부 주도의 사업에 대한 필요성을 강조해왔는데
온디바이스 AI는 제품의 차별화를 위해서도 중요하지만, 제품 생산성을 위해서도 꼭 필요하다. AI 제조를 통한 생산성 향상을 위해서는 IoT 기반에 AI를 접목한 지능형 사물인터넷(AIoT) 기술이 활용되는데, AIoT용 시스템반도체를 필요로 하게 된다. 스마트팩토리, 스마트홈, 스마트시티가 좋은 사례다. 특히, 스마트팩토리의 AI 응용은 제조업에서의 생산성 향상으로 이어진다. 예를 들어 공장에서 가장 많이 활용할 수 있는 기계 설비의 관리와 품질이다. 기계와 장비가 고장 날 가능성이 큰 시기를 예측해 사전 예방 정비의 최적의 시기를 알려주는 것이다. 반도체 제조공정에서는 불량을 최소화하고 생산수율을 높이는 데에도 큰 도움을 줄 수 있다.
공장에서 가장 많이 활용할 수 있는 AI 응용 분야는 기계 설비의 관리와 품질이다. 기계와 장비가 고장 날 가능성이 큰 시기를 예측해 사전 예방 정비의 최적의 시기를 알려주는 것이다. 다양한 설비데이터를 수집한 후 단순한 통계 분석보다 AI 분석을 적용함으로써 정비의 신뢰성을 개선할 수 있다. 대표적인 국내 스마트팩토리 사례로 삼성전자와 LG전자가 있다. 2023년 삼성전자는 온양, 천안공장에 세계 최초 반도체 패키징 무인화 라인을 가동했다. 웨이퍼 이송장치, 리프트, 컨베이어, 반송장비 등 설비 완전자동화를 실현했다. 이외에도 온디바이스AI 가 핵심인 휴머노이드 로봇, 협동로봇 등도 함께 활용된다.
최근 미국 관세와 같은 지정학적 이슈에서도 제조 AI가 주목받고 있다. 미국은 기업들에게 공장을 다 미국으로 옮기라고 하는데, 회사들은 여기에 대응해 스마트팩토리를 써서 사람의 일손을 줄이려고 하는 것이다. 지금의 스마트팩토리는 손발 역할에 머무는 단순 자동화가 아니다. AI가 적용되면서 이제는 머리 역할을 하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실제 공장에 많은 사람들을 필요로 하지 않게 된다.
제조 AI 분야에서도 산업부가 몇천억원 수준의 예산을 만들어 정부 과제를 추진할 필요가 있다. 제품 차별화뿐만 아니라, 제품 생산성을 위해서도 꼭 필요하다. 온디바이스 AI를 포함해 새로운 정부가 이쪽을 많이 키워서 집중적으로 투자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기사 일자: 2025.06.10. 14:11
기사 출처: 시사저널e
기사 원문: https://www.sisajournal-e.com/news/articleView.html?idxno=412417